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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고려시대 요리사는 어떤 계층이었을까

by chyukochi 2025. 4. 20.

 

1. 고려시대 요리사의 의미, 역할
고려시대의 요리사는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 인력이 아닌, 각기 다른 사회 계층 속에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 전문 인력이었다. ‘요리사’라는 현대적 개념은 당시엔 사용되지 않았지만, 왕실과 사찰, 귀족 가문, 민간 등 각 환경에 따라 조리를 담당하던 사람들이 존재했다. 궁중에서는 음식을 만드는 일을 전담한 전문 관청과 인력이 존재했으며, 이들은 단순히 음식을 만들 뿐 아니라 각종 연회나 제사, 외교 행사 등 국가의 중요한 의례에 필수적인 인물들이었다. 특히 고려는 유교보다 불교의 영향이 강했던 시기였기에, 사찰에서도 스님이나 행자들이 조리와 관련된 전문성을 갖추었다. 그 외에도 귀족 가문에서는 가내에서 숙련된 하인이 조리를 맡았고, 일반 민간에서는 주로 여성들이 음식 조리를 담당했다.

2. 궁중 요리사와 관청 소속 인력
고려 왕실에서 음식은 권위와 위엄을 드러내는 상징이었기에, 궁중 요리사는 엄격한 기준에 따라 선발되고 배치되었다. 고려에는 ‘사온서(司醞署)’나 ‘사복시(司僕寺)’ 등과 같은 음식과 관련된 관청이 존재하였으며, 이곳에는 술과 음식의 제조를 전담하는 인력이 있었다. 이들은 관노나 천민 계층에서 선발되었으며, 특별한 기술을 갖춘 경우 기예를 갖춘 인력으로서 일정한 존중을 받기도 했다. 궁중의 요리사는 일상적인 식사뿐 아니라 연회나 제사, 그리고 외교 사절 접대 등에서 전문적인 상차림을 준비하였고, 음식의 모양과 상차림, 계절 음식에 대한 이해 등 고도의 지식과 경험이 있는 전문 인력이었다. 특히 요리의 기술이 뛰어난 자는 상을 받아 품계를 올리거나 특정 직책에 승진하는 일도 있었다. 이처럼 궁중 요리사는 실질적으론 하급 계층이었지만, 기술력에 따라 한정적으로는 사회적 이동이 가능했다.

3. 사찰 내 공양주, 전문성
불교 중심 국가였던 고려시대에는 전국 곳곳에 사찰이 세워졌고, 그만큼 많은 승려와 수행자들이 머물렀다. 이들 공동체의 식사를 담당한 이들이 바로 공양주였다. 공양주는 일반적으로 비구니 또는 여성 신도들이었으며, 그중에서도 특히 숙련된 이들은 사찰 음식의 조리법에 통달하여 스님들에게 건강하고 수행에 알맞은 음식을 제공했다. 사찰 요리는 육류를 금하고 채소와 곡물, 각종 해조류, 두부나 산나물 등을 활용한 복잡한 조리 기술을 필요로 했기에, 공양주들은 단순한 조리인을 넘어 수행의 일환으로 요리를 익히고 수행자의 삶을 도왔다. 이들은 지역 주민들에게도 음식 시주를 하거나 음식을 제공하면서 사찰 음식 문화를 확산시키는 데 기여했다. 고려 후기에 이르러 이러한 사찰 요리의 전통은 조선의 선조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쳐, 향후 오늘날 한식의 근간을 이루게 된다.

 

고려시대 요리사는 어떤 계층이었을까



4. 민간에서의 요리사
민간에서는 특별히 요리사라는 직업이 공식적으로 분화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큰 집안이나 지주 계층의 가내에서는 요리만을 담당하는 하인이 존재했다. 특히 잔치나 제사와 같은 특별한 날에는 요리를 전문적으로 도맡는 이들이 있었고, 이들은 주로 하층민, 노비, 여성 중 조리에 능한 이들로 구성되었으며 요리 장인이라 불렸다. 특별한 요리 기술을 가진 경우에는 지방 양반 가문이나 상류층 집안에 소속되어 장기간 고용되기도 했다. 고려 말기에는 도시화가 진행되며 외식 문화가 제한적으로 등장했는데, 이때 장터나 시장 근처에서 음식을 만들어 파는 장사꾼들도 등장하였다. 이들은 초기의 상업적 요리사로 볼 수 있으며, 시장 경제의 확대와 더불어 요리 기술의 전파자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들은 사회적 위상이 낮고, 경제적 처지는 매우 열악한 편이었다.

5. 기술의 계승과 요리사의 위상
고려시대 말기에 이르러 요리에 대한 관심은 점차 높아졌고, 조리 기술은 구전과 실습을 통해 세습되거나 사사(師事)를 통해 전수되었다. 궁중 요리사나 공양주, 상류층 가문에 소속된 요리사들은 자신의 요리법을 후세에 전하는 방식으로 기술을 보존했다. 고려시대는 조리법을 문서화하거나 공식적으로 기록하는 전통이 미약했으나, 불교 문헌이나 문서 등에 간접적으로 음식과 요리 기술이 언급되곤 했다. 고려 후기에는 외국과의 교류가 활발해지며 요리에 외래 조리법이 유입되고, 이는 곧 조선 초기 궁중 음식과 양반가 요리의 형성에 기초가 되었다. 이처럼 고려시대 요리사는 비록 대부분 하층 계급에 속했지만, 그들의 기술은 단순한 생계 수단을 넘어 문화적 자산으로 이어졌다. 특히 특정한 기술이나 전문성을 갖춘 이들은 시대를 넘어 후대에 영향을 미치며, 음식 문화를 계승하는 숨은 장인들로 요리사의 위상을 높였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에도 요리를 하는 직업은 단순히 요리를 만드는 것에서부터 유행을 만드는 전문가가 되기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얼마 전 막을 내린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있었던 넷플릭스의 <흑백 요리사>만 봐도 알 수 있다. 하나의 음식을 만드는 것은 단순히 결과물을 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들의 기준, 문화, 자긍심, 자존심 등 모든 것들의 집합체임을 알 수 있었다. 꼭 일류 호텔이나 유명한 요리사가 아니더라도 자신만의 음식 레시피에 자긍심을 갖고 요리를 하는 수 많은 장인들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