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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후기 의복의 형태

by chyukochi 2025. 4. 16.

1. 조선 후기 사회 변화와 의복 문화의 전환

조선 후기는 정치적으로는 왕권의 약화와 세도정치의 시작, 경제적으로는 상품 화폐 경제의 확대, 문화적으로는 실학과 서민문화의 부상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많은 변화를 겪은 시기였다. 이러한 흐름은 자연스럽게 의복 문화에도 영향을 주었다. 기존에는 신분에 따라 복식의 색, 장식 등이 엄격하게 제한되었지만, 후기에는 이러한 경계가 점차 흐려지며, 일정 수준 이상의 부를 가진 중인·서민 계층도 화려한 복식을 모방하거나 개성 있게 변형해 입는 일이 많아졌다. 실제로 양반 여성과 중인 여성의 의복 차이는 점점 희미해졌고, 금지령이 여러 차례 내려질 정도로 의복을 사치하는 등 유행이 확산하였다. 특히 도시를 중심으로 옷의 형태와 소재, 색감에 있어 다양성이 나타나며, 전통 의복이 더 실용적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외형의 변화를 넘어 조선 후기 사람들의 가치관과 정체성에도 깊이 연결되어 있었다.

2. 여성 의복의 변화

조선 후기 여성 의복에서 가장 큰 변화는 저고리의 길이와 그 형태의 변화이다. 17세기까지만 해도 저고리는 허리선을 덮는 정도의 길이였으나, 후기에는 점점 짧아져 19세기에는 겨우 가슴을 가리는 수준까지 올라갔다. 이는 미적 감각의 변화뿐만 아니라, 활동성과 장식성 모두를 추구한 결과로 해석된다. 짧아진 저고리와 함께 등장한 것이 흰 속옷이 겉으로 살짝 드러나며 여성미를 강조하는 스타일이 유행했다. 치마는 점점 더 풍성해졌고, 그 주름과 폭으로 부유함이나 신분을 은연중에 과시하기도 했다. 또한 옷감은 명주나 비단처럼 고급 재질이 선호되었으며, 다양한 색상과 문양이 가미되었다. 기혼 여성은 ‘댕기’ 대신 쪽머리를 하고, ‘비녀’, ‘노리개’, ‘가락지’ 등의 장신구가 인기 있었다. 이러한 변화는 여성복이 단순히 기능적인 복장을 넘어서 하나의 패션으로 인식되었음을 보여준다.

3. 남성 의복의 점진적 변화

남성 의복은 여성에 비해 보수적 성격이 강했으나, 조선 후기에는 일부 변화가 나타났다. 기본 복식은 저고리와 바지, 그 위에 두루마리나 조끼를 입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조선 후기에 접어들며 활동성을 강조한 짧은 두루마기나, 방한용으로 도입된 마고자 등이 유행하기 시작했으며, 이는 특히 중인이나 상공인 계층 사이에서 실용성과 세련됨을 동시에 갖춘 의복으로 인식되었다. 또, 상류층 남성들은 관직 유무에 따라 관복을 갖추어 입었고, 일반 양반 남성들도 공식 행사나 제사 등에서는 흰색 도포를 착용하였다. 머리 모양은 상투를 틀고 삿갓을 착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며, 갓의 재질과 형태는 신분과 품격을 구분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또한 갓끈이나 머리띠 등으로 신분 계층을 나타내기도 했다. 

 

조선후기 의복의 형태



4. 신분별, 계층별 의복 차이

조선은 철저한 신분제 사회였고, 의복은 신분을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상징이기도 했다. 천민에서 왕족까지의 복식은 소재, 문양, 색, 장신구 사용 등에 따라 엄격히 구분되었다. 양반은 비단, 명주, 무명 등 고급 소재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고, 복식도 다양했지만, 평민 이하의 계층은 천연 염색된 무명옷이나 삼베옷을 입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는 상업이 발달하면서 중인과 평민 중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계층이 신분 상위 계층의 복식을 흉내 내거나, 더 화려한 복식을 착용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에 따라 국가에서는 여러 차례 금지령을 내리고 사치를 규제하려 했지만, 현실적으로 제재가 어렵고 유행의 흐름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이로 인해 사회 내부에서 ‘누가 무엇을 입을 수 있는가?’에 대한 갈등이 심화되었으며, 복식이 곧 사회적 정체성의 표현이자 개성의 표현이었다. 


5. 외래문화와 서민 패션의 부상

조선 후기에는 청나라 등 외부 문화의 영향도 서서히 의복에 반영되기 시작했다. 특히 사신단을 통해 도입된 청나라식 복장이나 각종 장식물은 상류층을 중심으로 관심을 끌었으며, 이를 변형한 의복이 일부 유행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마고자 등은 청나라 복식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평가된다. 한편, 서민 계층의 패션도 점차 개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지방마다 특색 있는 의복 스타일이 생겨났으며, 직조 기술의 발달로 다양한 천이 보급되면서 서민들도 비교적 실용적이고 아름다운 옷을 즐길 수 있었다. 조끼, 한삼, 누비옷 등 계절에 맞춘 옷의 변화도 더욱 뚜렷해졌다. 또한 계절과 환경에 맞춘 옷차림의 다양화는 조선 후기 생활문화 전반의 풍요로움을 반영하기도 했다. 이는 현대 사회와 마찬가지로 개인의 미의식과 실용성의 균형을 추구한 결과이며, 조선 후기 의복도 다양성을 보여주는 결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