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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고려시대의 유행은 뭐가 있었을까?

by chyukochi 2025. 4. 17.

고려시대(918~1392)는 정치적으로는 왕권과 귀족 세력이 경쟁하고, 불교가 국가 이념으로 자리 잡은 시기였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적 흐름과 별개로, 고려는 유행과 문화의 발전이 뚜렷하게 나타난 시기이기도 하다. 고려는 송(宋)과 요(遼), 그리고 금(金)이나 원(元) 등 주변 국가들과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외래문화를 받아들였고, 이를 토대로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해 나갔다. 귀족 중심의 화려한 복식과 장신구, 불교를 중심으로 한 종교 예술, 문학과 음악의 발달, 그리고 외래문화 수용을 통해 형성된 생활양식 등은 고려시대 유행의 주요한 양상이라 할 수 있다.

먼저 복식의 유행을 살펴보면, 고려는 귀족 중심의 사회였던 만큼 의복은 계급을 구분짓는 수단이자 권위의 상징이었다. 고려의 귀족 여성들은 화려한 색상의 옷과 장식품으로 치장했으며, 금사와 은사(실)를 사용한 비단옷이 유행했다. 특히 당나라와 송나라로부터 영향을 받은 의복 스타일이 상류층 사이에서 유행하였고, 머리를 높게 틀어 올리고 가체를 덧씌우는 머리 장식도 인기를 끌었다. 남성의 경우에도 관복과 평상복이 구분되어 있었고, 관료 계층은 곤룡포나 단령 등을 착용했다. 옷의 길이나 넓이, 문양은 신분에 따라 제한되었지만, 현실에서는 이를 어기고 더 화려하게 입는 경우도 많아 의복 단속령이 여러 차례 내려지기도 했다.

예술과 공예의 분야에서도 유행은 뚜렷했다. 고려청자는 단순한 생활 용기를 넘어 예술품으로서의 가치가 높았으며, 특히 12세기에는 상감기법이 유행하여 세계적으로도 주목받는 작품들이 제작되었다. 귀족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청자들을 수집하거나 선물로 주고받는 것이 하나의 유행처럼 자리 잡았다. 불화(불교 그림)와 불상도 유행의 한 축을 이루었는데, 이는 불교가 국가적 종교로 기능하면서 자연스럽게 확산된 것이었다. 불교적 이상을 표현한 그림이나 조각은 궁궐, 사원 등에 널리 퍼졌고, 이는 종교적 신앙을 넘어서 장식을 하는 기능으로도 확대되었다. 이 시기 불상은 섬세하고 부드러운 선으로 유명하며, 탑과 금동 불상은 왕실과 귀족의 후원으로 제작되었다.

 

 

고려시대의 유행은 뭐가 있었을까?



문학과 예술 분야에서도 고려 특유의 유행이 있었다. 한문학이 학문과 관료 사회의 중심이었다면, 민간에서는 향가와 속요가 유행하며 구전되었다. 고려가요로 불리는 이 노래들은 궁중 연회나 민간 모임 등에서 불리며 사람들 사이에서 퍼져나갔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청산별곡, 서경별곡 등이 있으며, 이들은 단순한 민요가 아니라 사회적 정서와 감정을 담은 문학 작품으로 기능했다. 이러한 고려가요는 당시 여성들의 감정 표현이나 귀족 자제들의 연애 감성, 혹은 유랑 예인들의 삶을 투영하여 귀족 사회는 물론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도 널리 유행하였다. 음악의 경우, 당악(唐樂)과 향악(鄕樂)이 나란히 연주되었으며, 궁중에서는 정재(呈才)라는 무용과 함께 공연되는 복합 예술 형태가 유행했다.

고려 후기로 갈수록 외래문화의 수용도 유행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였다. 특히 원나라(몽골)와의 관계가 깊어지면서 몽골식 의복, 음식, 언어 습관 등이 상류층 사이에서 유행하게 되었다. 몽골풍의 옷차림은 '복건'이라 불리는 모자나 털옷, 짧은 상의에 허리띠를 두른 복장이었으며, 이는 실용성과 장식을 동시에 갖춘 복식으로 귀족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또한 몽골의 과자 같은 각종 간식도 고려 궁중에서 유행했으며, 이는 고려인들의 식생활 전반에 영향을 끼쳤다. 특히 원 간섭기를 거치면서 고려 왕실은 원 황실과의 교류를 통해 혼인 관계를 맺는 등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고, 그 과정에서 원나라 궁정 문화가 자연스럽게 고려 사회로 유입되며 새로운 유행을 낳았다.

결론적으로 고려시대의 유행은 단순한 외형적 변화나 사치의 표현에 그치지 않고, 당시 사회의 문화적 흐름과 가치관을 반영하는 중요한 척도였다. 복식과 장신구 등 외래문화 수용까지, 고려의 유행은 정치적 이념이나 종교, 외교적 관계에 따라 다양하게 형성되고 발전했다. 특히 귀족 계층을 중심으로 한 유행은 서민 계층에도 영향을 끼치며 점차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었고, 이는 고려라는 시대의 고유한 미의식과 문화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처럼 고려시대의 유행은 단순한 장식적 요소가 아닌, 당대인의 삶과 가치, 개인의 개성이 투영된 종합적인 문화 현상이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유행은 시대적 배경과 이념 차이에 따라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고려는 불교를 중심으로 한 개방적이고 화려한 문화를 지향하면서 귀족 중심의 사치와 예술이 발달했던 반면, 조선은 성리학을 국시로 삼아 유교적 절제와 검소함을 강조하였다. 고려에서는 금실과 은실로 장식된 화려한 복식이나 청자와 불화 같은 장식예술, 민속적 감성을 담은 고려가요가 유행한 데 비해, 조선에서는 신분에 따른 의복 규제가 더욱 엄격해지고, 단정하고 소박한 한복 스타일이 정착되었으며, 예술 또한 군신 관계와 효를 강조하는 유교적 주제에 집중되었다. 특히 조선은 명나라의 예법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외래문화보다는 전통과 규범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했고, 대중문화보다는 학문과 의례 중심의 문화를 유행으로 삼았다. 따라서 고려의 유행이 예술성과 개방성에 초점을 맞췄다면, 조선의 유행은 윤리적인 규범성에 우선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