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대나 그 시대를 뒷받침하는 계층은 노동자입니다. 시대에 따라 약간씩 다른 점은 있겠으나, 노동을 하는 업무는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고려시대의 노동자는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1. 고려시대 노동자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고려시대의 노동자는 다양한 사회 계층에 걸쳐 존재했으며, 단순히 물리적인 노동을 제공하는 이들뿐만 아니라 각종 자원의 생산과 국가 운영에 필수적인 역할을 수행한 집단이었습니다. 이들은 주로 농민과 수공업자, 기술자, 공장(工匠), 그리고 노비로 구성되며, 각기 다른 신분과 노동 형태 속에서 살아갔습니다. 당시 사회는 철저한 신분제 사회였기에 노동자 역시 신분에 따라 법적 권리와 의무, 생활 수준이 달랐습니다. 법적으로 양인이면서도 사회적으로는 열등한 지위를 가졌던 농민이나 기술자들은 국가와 지배층의 경제적 기반을 이루는 존재였으며, 천민으로 분류된 노비는 거의 재산과 같은 취급을 받으며 노동을 강요당했습니다. 노동자는 대부분 관청이나 문벌 귀족 등의 상류층에 예속되어 일했으며, 자율적 노동보다는 지배 구조 안에서 부과되는 의무로서의 노동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이는 고려시대의 경제 구조가 노동자의 희생을 전제로 운영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2. 농업 노동자
농업 노동자는 고려 노동 계층의 절대다수를 차지했습니다. 이들은 주로 백정이라는 명칭으로 불렸으며, 법적으로는 양인이었지만 현실적으로는 귀족 지주 또는 사찰에 예속되어 소작하거나 세금을 납부하며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고려 초기의 전시과 제도 하에서는 일정한 토지가 분배되었으나, 이후 토지의 사유화가 진행되면서 이들 농민은 자영농에서 소작농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들은 조세, 공납, 군역의 세 가지 의무를 지녔으며, 특히 ‘역’은 군역 또는 부역 형태로 실제적인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이었습니다. 국가나 지방에서 궁궐, 도로, 성곽 등을 건설하거나 수리할 때 이들이 동원되었으며, 이는 생업을 중단하고 장기간 노동에 종사해야 했기 때문에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농번기와 부역 시기가 겹칠 경우에는 생계 위협으로 이어졌고, 그로 인해 도망하거나 유랑하는 농민이 다수 발생하였습니다.
3. 수공업자 / 기술자
수공업자와 기술자 역시 고려시대 노동자의 중요한 부분이었습니다. 이들은 국가 소속의 관영 수공업체에서 일하거나, 귀족과 사찰에 소속되어 생산활동을 했습니다. 관청에 소속된 장인들은 금속, 목공, 석공, 공예 등 다양한 기술 노동을 담당했으며, 고려청자나 금속활자 같은 우수한 공예품도 이들의 손에서 탄생했습니다. 이들은 공인이라 불렸으며, 일부는 세습적으로 기술을 전수받아 장기간 특정 분야에 종사하였습니다. 국가 소속의 관영 공장은 개경이나 나주, 전주 등 주요 도시 인근에 집중되었고, 이는 국가가 주요 산업을 직접 통제하려 했음을 보여줍니다. 공장은 법적으로는 양인이지만, 특정 기술에 종사해야 했고 타 직종으로의 전환이 제한되었기에 실질적으로 신분이 고착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사찰 소속 장인들은 불상을 조각하거나 탑을 쌓고, 불경을 인쇄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으며, 이는 불교문화의 확산에도 기여하였습니다.
4. 노비
노비는 고려시대 노동자 중 가장 낮은 신분에 속한 집단으로, 전체 인구의 약 30%가 노비였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이들은 국가 또는 사적 주인에 소속되어 농사나 가사, 많은 일들을 보조하는 노동을 수행하였습니다. 공노비는 국가 기관이나 관청에 속해 행정과 수공업 등 다양한 업무를 맡았으며, 사노비는 귀족이나 향리 등 사적 지주에게 예속되어 생활했습니다. 공노비는 비교적 조직적인 관리하에 있었고, 일부는 전문 기술을 익혀 일정한 지위와 생활 안정을 보장받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열악한 환경에서 중노동에 시달렸습니다. 사노비는 더욱 가혹한 처우를 받았으며, 생계를 보장받지 못한 채 사실상 노예와 다름없는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노비의 자식은 자동으로 노비가 되었으며, 노비 신분에서 벗어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특히 가혹한 주인의 경우, 노비에 대한 폭력과 착취가 심각했으며 이는 종종 사회 불안 요소로 작용하기도 했습니다.
5. 국가부역 노동자
국가 부역 노동자 또한 고려시대 중요한 노동력 공급원이었으며, 이들은 일반 백성들 가운데 일정 기준에 따라 선발되어 단기 또는 장기로 국가의 공공사업에 동원되었습니다. 성곽과 궁궐, 수로 건설 등 대규모 건축의 경우 대부분 부역 노동자에 의해 진행되었고, 이들은 군현 단위로 조직되어 동원되었습니다. 부역은 백성의 의무 중 하나였지만, 실제로는 지방관이나 향리들이 과도한 동원을 요구하거나 대리 부역을 강요하는 등의 부정행위가 빈번했습니다. 특히 고려 후기 원 간섭기에 들어서면서 중앙 통제가 약화되자 지방의 부역 시스템은 부패와 착취로 인해 백성들의 고통을 더욱 가중시켰습니다. 이에 따라 부역을 회피하거나 도망치는 이들이 늘었고, 이는 지방의 사회적 혼란과 치안 불안을 초래했습니다. 또한 부역을 통해 일정 기술을 습득하거나 상업 활동에 눈을 뜬 일부 노동자들은 이후 자립의 기회를 얻기도 했지만, 이는 극히 드문 사례였습니다. 이처럼 노동자의 경우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계층 간 이동을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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