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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고려시대의 기후 대책 방법

by chyukochi 2025. 5. 1.

어느 시대나 날씨는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 데 중요한 것 중 하나이다. 날씨에 따라서 인간의 삶은 변화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때문에 우리의 과거에는 어떤 대책들이 있었고, 또 그것을 본보기 삼아 현대 사회에 적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1. 기후관장 기관, 역할

고려시대(918~1392)는 자연환경에 대한 인식이 점차 체계화되던 시기로, 자연재해나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여러 대책이 마련되었다. 당시의 농업 중심 사회에서 기후는 곧 국가의 존립과 국민의 생계에 직결되는 문제였기 때문에, 국가 왕실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자연에 대한 대응 방식을 고안하고 실행에 옮겼다. 우선 국가 차원에서는 농업 생산성을 보장하기 위해 기후를 예측하고 자연재해에 대응하는 시스템이 강조되었다. 대표적으로 고려 정부는 천문학과 점성술에 기반한 기상 관측을 수행했고, 기상관측 등을 관장하던 기관인 서운관(書雲觀)을 통해 계절 변화, 강우량, 기온 등 자연현상을 관찰하였다. 서운관은 오늘날의 기상청이나 다름없었던 역할을 수행했다. 이러한 관측 결과는 농사력 편찬에 반영되어 농민들이 파종을 하거나 곡식의 수확 시기를 보다 정확히 파악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이로 인해 가뭄이나 홍수 등 기후 재해로 인한 피해를 줄이려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2. 곡물 비축 정책

또한 고려는 기후에 따른 흉년과 재해에 대비하기 위한 곡물 비축 정책을 실시하였다. 특히 의창이나 상평창 제도는 대표적인 사회경제적 기후 대책이라 할 수 있다. 의창은 주로 흉년에 곡식을 백성들에게 나누어주는 구휼제도였고, 상평창은 일종의 물가 조절 기관으로서 곡물 가격 안정을 목적으로 기능하였다. 이러한 제도는 기후로 인한 식량난에 대비한 조치로, 단순히 생존을 위한 대응책을 넘어 사회 질서 유지를 위한 정책이었다. 예를 들어, 가뭄이나 홍수로 농작물 수확이 어려워지면 정부는 미리 저장해두었던 곡식을 시장에 풀어 물가를 안정시키고 백성들의 불만을 잠재우는 데 사용하였다. 이와 같은 제도적 장치는 고려가 자연재해를 통제함으로써 백성의 삶을 보살피고 동시에 정권을 안정시키는 역할로도 활용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3. 재난에의 대응책 

기후 재난이 발생했을 때 고려 정부는 천재지변을 정치적 신호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왕은 재해를 ‘하늘의 경고’로 해석하여 스스로 잘못을 반성하고, 정치적 쇄신을 꾀하거나 정책을 마련하는 형태로 대응하였다. 예컨대 심각한 가뭄이나 홍수가 발생하면 왕은 자신의 통치에 문제가 있었음을 인정하고, 대대적인 사면령을 내리거나 부당한 세금을 감면하는 조처를 했다. 이러한 의례적 행위는 단순히 기후 문제에 대한 물리적 대응을 넘어, 통치의 정당성을 유지하기 위한 상징적 행위이기도 했다. 이는 유교적 통치 이념과 천명사상에 근거한 것으로, 자연의 변화는 왕권의 강약을 드러내는 수단이 되기도 했으며, 이를 무시하거나 방치하는 것은 왕권의 정당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따라서 고려의 기후 대응은 과학적, 행정적 조치와 더불어 정치적인 목적도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 지방의 대응책

지방 행정 단위에서도 기후 변화에 따른 대응이 이루어졌는데,  지역 단위에서의 재해 보고와 응급조치가 있었다. 지방 관리들은 기후 관련 이상 현상이나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때 이를 중앙 정부에 신속히 보고하고, 곧바로 지역 주민들에게 식량이나 생필품을 지급하는 조치를 취하였다. 특히 이때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향약과 같은 공동체 자치 규범이었다. 향약은 공동체 구성원들이 서로 돕고 질서를 유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기능하였으며,  재난 발생 시 함께 대처하면서 물자 분배 등을 통해 재해를 극복하려는 역할을 하였다. 이는 중앙정부의 제도적 대책과 별개로, 민간 차원의 기후 재해 대응 체계를 보여주는 사례였다. 더불어 불교 사찰들도 지역 내 구호의 거점이 되었는데, 사찰 역시 재해 시에는 음식을 나누어주는 시주 활동을 통해 공동체의 안정에 기여하였다.

5. 수리시설의 정비

고려는 기후에 영향을 받는 수리시설의 정비에도 적극적이었다. 농업 생산은 물 공급에 절대적으로 의존하였기 때문에 저수지와 제방, 수문 등의 시설은 국가적 차원에서 중요한 시설이었다. 특히 가뭄이 심하거나 홍수가 반복되면 관개 시설의 정비가 곧 기후 대응책이 되었다. 에 따르면, 왕이 직접 지방의 저수지를 둘러보거나, 무너진 제방 복구에 병력을 동원하는 사례도 종종 있었다. 또한 농업 생산량을 높이기 위해 새로운 농업 기술이나 작물 재배법을 도입하려는 시도도 이루어졌다. 예컨대 고려 후기에 들어서는 벼 이앙법이 확대되며 물 자원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었고, 이에 따라 수리시설 관리가 체계화되었다. 이러한 시설의 기반 정비는 단기적 재해 대응을 넘어 장기적인 기후 변화에 대한 체계적인 준비라고 할 수 있다. 

 

고려시대의 기후 대책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