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푸드

한국인은 왜 번데기를 먹게 되었을까?

by chyukochi 2025. 7. 13.

1. 전쟁과 궁핍 속에서 시작된 단백질 대체 식품
한국에서 번데기를 먹는 문화는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며 본격화되었다. 당시 한국은 전쟁과 식량난으로 인해 육류나 생선 같은 동물성 단백질을 구하기 어려웠다. 이러한 상황에서 양잠 산업이 활발해지면서 실을 뽑고 남은 부산물인 누에 번데기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본래 폐기되던 이 번데기는 단백질 함량이 높아 가난한 서민들에게 훌륭한 영양 공급원이 되었다. 특히, 육류 소비가 제한되던 1950~60년대에는 가공이 간단하고 보관이 용이한 번데기가 지방 농촌은 물론 도시 빈민가에서도 인기를 얻었다. 정부 역시 이를 저렴한 단백질 식품으로 인정하며, 장려하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당시 번데기를 먹는 행위는 생존과 실용의 문제였으며, 한국인의 식생활 속에 서서히 뿌리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2. 산업화와 함께 퍼진 길거리 간식 문화
1970년대 이후 산업화와 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되며 사람들은 점차 빠르게 먹을 수 있는 간편식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번데기는 시장이나 공원, 학교 앞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길거리 간식으로 자리 잡았다. 솥에서 김을 내뿜으며 끓여낸 번데기는 강렬한 냄새와 함께 호기심을 유발했고, 소금과 간장으로 간을 더한 짭조름한 국물 맛은 독특한 감칠맛을 전해주었다. 특히, 어릴 적부터 접해온 사람들에게 번데기는 단순한 간식이 아닌 향수를 자극하는 ‘추억의 맛’으로 여겨졌다. 또한 가격이 저렴해 아이들 용돈으로도 쉽게 사 먹을 수 있었고, 영양가 있는 간식으로 부모들도 크게 반대하지 않았다. 이처럼 번데기는 단순한 식품을 넘어 당시 시대를 반영하는 대중문화의 일부로 정착되었다. 최근에는 길거리에서 번데기를 파는 노점을 쉽게 볼 수는 없지만, 어릴 적 번데기를 먹던 맛을 기억하고 여전히 추억과 함께 소비되고 있다. 

3. 번데기의 영양적 가치
번데기는 단백질 함량이 높고 지방이 적으며, 칼슘, 철분, 아연 등 다양한 무기질과 비타민 B군이 풍부한 식품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식용 곤충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이 높아지면서, 번데기는 지속 가능한 미래 식량 자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국제연합 식량농업기구(FAO)도 곤충을 미래 식량의 대안으로 보고 있으며, 그중 한국의 번데기 식문화는 비교적 앞선 사례로 평가받는다. 최근에는 기존의 국물 형태뿐 아니라 튀김, 샐러드, 크래커, 분말 형태로 가공되어 고단백 간식이나 반찬 재료로도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또한, 알레르기 반응 여부를 테스트한 후 기능성 식품으로의 가능성도 검토되고 있다. 일부 스타트업은 번데기를 단백질 보충제나 반려동물 사료로도 활용하려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으며, 이는 전통적인 곤충 음식 문화가 현대 기술과 결합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4. 세대 차이와 문화적 인식의 변화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번데기에 대한 인식이 세대와 문화에 따라 다소 엇갈린다. 장년층에게는 익숙하고 향수를 자극하는 음식이지만, 젊은 세대에게는 생김새나 냄새 때문에 기피 대상이 되기도 한다. 특히 글로벌화된 식문화 속에서 외국인의 시선과 비교되는 경우가 많아 왜 번데기 같은 곤충을 먹느냐고 질문을 받기도 한다. 그런데도, 이는 단지 생김새나 편견 때문일 뿐, 과거 생존의 지혜에서 비롯된 식문화로 이해되어야 한다. 나아가, 전통을 지키면서도 현대의 위생, 조리 기술을 활용해 식감을 개선하고 맛을 다양화한다면 새로운 소비층을 끌어들일 가능성도 크다. 실제 우리에게 익숙한 번데기 맛 뿐 아니라, 매운 양념이 가미된 번데기 등 위생적이고 오래 보관하며 먹을 수 있는 통조림 등이 다양하게 나오고 있어 젊은 세대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번데기는 단순히 생김새가 특이한, 맛도 특이한 간식이 아니라, 한국인의 역사와 삶, 그리고 식문화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상징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인은 왜 번데기를 먹게 되었을까?